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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법연구회' 출신의 직격탄… 정진경 前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외교 협정을 침해하는 판결 해선 안 돼
김능환 前 대법관, 왜 건국하는 심정으로 징용 배상 판결했는지 의문
양승태, 靑과 징용공 배상 재판 문제 협의한 게 왜 사법 농단인가
김명수 대법원장, 판사를 검찰서 조사받게 해 법원 독립성 해쳐"


 

 

정진경(56) 전(前)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현 정권에서 사법부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법연구회'의 핵심 멤버였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함께 술 마시며 어울리던 시절이 있었다. 임명 당시 정치적 편향성 때문에 논란이 됐던 민변 출신 김선수 대법관과도 가까웠다.

그런 그가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에 마련된 '국민의 소리' 연단(演壇)에서 문재인 정권 비판 연설을 하고 있다.

 
정진경 전 부장판사는 '판사는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진경 전 부장판사는 "판사는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1990년대 법원 내부 통신망이 만들어진 뒤로 법원의 문제점에 대해 글을 올린 이는 일선 판사로서 내가 처음이었다. 법원 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많이 냈다. 10년 전 판사직을 그만둔 뒤로는 조용히 살려고 했다. 하지만 나라가 무너져가는 걸 보면서 이제는 현 정권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법부 내 '하나회'라는 말을 듣는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에는 1994년 가입한 것으로 아는데?

"당시 공안·노동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의 획일화된 판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내가 활동할 때는 '이너서클' 같은 성격은 없었다. 오히려 엘리트 판사들만 들어갈 수 있는 '형사판례연구회'나 '민사판례연구회'가 법원 내 '하나회'였다. 그러다가 우리법연구회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노무현 정권에서 강금실 법무장관과 박시환 대법관이 나오면서였다."

―2005년 우리법연구회를 탈퇴했다. 어떤 사건이 있었나?

"법원 내부 비판 글은 순전히 개인 의견이었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의 입장으로 언론에 보도되곤 했다. 이게 부담스러워 탈퇴했다."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임명으로 촉발된 '사법 파동' 때 오히려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정면 비판해 언론에 크게 보도됐는데?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대법관에 임명되자 진보 성향 판사들을 중심으로 반발했다. 바로 전해에 그가 광우병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맡은 판사들에게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이 직무를 넘어선 재판 개입이었다는 것이다. 신 대법관의 사퇴를 종용하는 판사회의가 전국 법원마다 열렸다. 내가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친한 후배 판사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형님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고 항의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으로 신영철 대법관의 입장에 선 것은 아닌가?

"그와는 함께 근무한 적이 없다. 법을 다루는 판사가 법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면 안 된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헌법상 신분 보장이 되는 판사들이 다른 판사(신영철)에 대해 옷 벗으라는 게 말이 되나. 집단 여론의 압박에 굴복해 대법관이 사직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뒷날 이런 식으로 다른 대법관이 또 공격받고 물러날 수 있다. 결국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쟁점은 법원장에 의한 '재판 개입'이었는데, 이를 어떻게 보나?

"사건에 대한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量刑)의 문제는 재판권에 속한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법원장이 재판 절차 진행에 관한 견해를 개진할 수 있다고 본다."

―구속 수감된 양승태 대법원장의 혐의 중에서 가장 위중한 부분이 재판 개입에 따른 직권 남용이다. 법원행정처가 일제 치하 징용노동자 배상 재판 문제를 청와대와 협의했다는 점이다. 이게 '사법 농단'으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는데.

"나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사법의 잣대로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미국 사법제도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판결에 참고할 수 있도록 국가의 관심사를 법정에 전달할 수 있다. 가령 대법원이 1965년 한일협정과 관계된 징용공 배상 청구 재판을 하려고 할 때, 정부는 그런 판결을 하면 한·일 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설명해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 법정에서는 그런 제도적 통로가 없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부에 전달할 수밖에 없다. 왜 그게 문제가 되나."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간 징용공 배상 대법원 판결에 대해 "3권 분립 체제에서 사법부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고 했는데?

"법원도 국가의 일부다. 선출되지 않은 판사가 국가 간에 맺은 외교 협정을 침해하는 판결을 해서는 안 된다. '사법 자제 원칙'이 옳은 것이다. 지금 보다시피 대법원이 징용공 배상 판결을 저지르고 나니 정부가 뒷수습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사법부의 이런 판결이 나오기 전에 정부는 막을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당초 징용 배상 청구를 기각한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 환송시킨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는데?

"김 대법관이 왜 그런 마음으로 판결했는지 모르겠다. 법관은 건국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에 따라 재판하는 사람이다."

―현 정권 들어와 초유의 '사법 농단' 수사와 재판이 이뤄졌고,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개혁을 하겠다고 나섰는데?

"김 대법원장과는 개인적으로 정말 친했다. 그는 법원 적폐를 개혁하겠다고 했으나 그 과정에서 큰 잘못을 범했다. 검찰의 독단을 견제하는 헌법기구가 사법부인데, 그는 정치 분위기에 휩쓸려 '수사에 협조하겠다'며 자발적으로 판사들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100명 가까운 판사가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대법원장 스스로 법원의 독립성을 해친 것이다."

 
정진경 前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왼쪽)

―과거에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고 했다. 요즘에는 판사들이 재판과 무관한 정치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 발언하고 있는데?

"2003년 미국에서 연수할 때다. 이라크 침공으로 미국 내 여론이 찬반으로 갈렸다. 미연방항소법원 관계자에게 판사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물으니 '판사는 물론이고 법원 직원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판사의 정치 성향이 자기와 다르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어느 누구도 그 판사에게 재판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피되면 해당 판사는 정말 치욕으로 여겨야 한다. 판사는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정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판사도 국민의 한 사람이니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직업 앞에 거의 유일하게 '명예로운' '존경하는' 수식어를 붙여주는 게 판사직이다. 그렇게 떠받드는 이유는 판사는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인내하고 남의 말을 듣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떠들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면 판사에게 그런 대접을 할 이유가 없다."

―조국씨의 아내 정경심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하지만 얼마 전 법원은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지도 않은 조국씨 동생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판사 본인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결했다고 주장하겠지만, 구속 여부가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됐다. 이게 정상인가?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다른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공정한 재판을 하라는 거지, 판사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독단(獨斷)이지 독립이 아니다. 판사의 양심은 철저히 법을 따르는 양심을 말한다. '내 양심은 깨끗하다'라는 것으로는 안 된다. 자신의 개인적 소신이 아닌 법의 양심을 따라야 한다."

―현 정권에서 '국정 농단' 수사가 벌어지면서 이명박·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정원장, 장관, 청와대 수석들의 신병 처리는 핫뉴스가 됐다. 한낱 영장 전담 판사 한 명의 손에서 이 거물(巨物)들의 운명이 결정돼 왔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 영장 판사의 출신 지역·학교·성향 분석까지 보도한다. 대단히 비정상적인 모습 아닌가?

"기본적으로 불구속 수사 및 재판이 원칙이다. 구속영장은 법정 출석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국 법원에서는 도망 우려와 사회적 위해(危害) 가능성이 입증될 때만 발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속시키는 것이 징벌이나 검찰 수사의 수단이 됐고, 유죄를 판단하는 잣대가 됐다. 영장 실질 심사도 마치 본재판처럼 변질됐다."

―당신도 광주지법에서 영장 전담 부장판사를 했는데?

"판사 시절 나는 검찰에서 올라온 구속영장을 많이 기각했다. 구속적부심에서도 피고의 방어권을 위해 90%를 풀어줬다. 이 때문에 법원을 옮겨갈 때마다 검찰이 내 뒷조사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도주 우려가 없으면 불구속해야 한다. 그동안 법원이 구속에 대해 잘못 해석해온 것이다."

―무죄 추정 및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비춰보면, 논란이 된 조국씨 동생의 영장 기각도 옳은 결정이었다고 봐야 하나?

"그런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결의 일관성이다. 어떤 판결이 나올지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같은 사건에 대해 결론이 달라지면 누가 재판부를 믿겠나. 박근혜·이재용 등 적폐 수사에서는 법원이 영장을 남발해놓고 조국 사건에 와서는 왜 이러는지 설명이 있어야 했다. 만약 영장 전담 판사들이 회의해서 '지금까지의 영장 발부 관행이 잘못됐으니 이제부터 법과 원칙에 충실하겠다'며 개선안을 마련해 공개한 뒤 이렇게 했으면 수긍했을 것이다."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재판 당사자들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재판의 신뢰는 이런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 그게 무너질 때 재판이 아니라 '개판'이고 '깜깜이 도박'이다. 공판(公判) 중심주의의 취지도 판사가 재판 당사자들과 말을 주고받음으로써 이들에게 판결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데 있다. 소위 뒤통수 치는 판결을 막기 위함이다."

―당신은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출신인데, 지금까지 대화를 나눠보니 오히려 보수 성향 같다 .

"1997년 미국 법원을 연수하면서 '진보 판사'라는 말은 모순이라는 걸 깨달았다. 판사는 기존의 법질서, 헌법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이다.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직업이 어떻게 진보나 급진적이 될 수 있나. 판사의 유형에는 법조문 그대로 따르는 교과서적 판사와 해석에 여유를 두는 리버럴한 판사밖에 없다. 어느 쪽 판사든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균형 감각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7/2019102701465.html